[배경에서 자동차가 지나다니는 소리, 건조한 바람의 소리 등의 잡음만 들리다 적막을 깨고 녹음자의 목소리가 나온다.]

.....-아. 보이스테스트.

 

지금부터 하는 말은 온전히 나로서 말하는 마지막 말이다. 그러니까 귓구멍 똑바로 열고 들어라. 이 녹음본은 네가 평생 들어야 할 내용일테니까.

 

너는 조지아 카즈베기 산의 보호시설 출신으로서 그곳의 대모이자...친모였던, 진실을 속인 어머니에게서부터 도망쳤다. 그때 생긴 PTSD로 인해서 지독한 인간 불신과 혐오에 시달려 지나다니는 타인은 물론, 너를 제일 믿어주고 행복한 시간을 함께한 사람들도 끊임없이 의심했다. 인간인 이상 언젠가 배신을 할지도 모른다며.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꿈꾸던 신이 되어서 모두를 등지고 평생을 홀로 걸어가고자 했다. 

 

[깊이 숨을 들이쉬는 소리, 목소리의 약간의 떨림이 전해져온다.]

하지만.. 지금의 난 더 이상 그러고 싶지 않아.

학원에서 함께 울고 웃었던 시간, 그리고 졸업 후에도 계속된 만남과 헤어짐 속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신용받을 기회가 있는 사람들이라고 7년간을 몸소 증명했어. 그렇다면 나도 그에 맞는 답을 하고 싶다. 설사 또다시 배신 당하더라도, 이제는 그 상처에서 벗어나고 싶어. 허나...그 기억을 가지고 있는 이상은 힘들겠지.

 

그러니, 난 내일부로 이 과거를 버릴거다. 

나로서의 정체성을 잃는다는건 저주이지만, 역이용하는 것도 나의 자유이자 선택. 언젠가를 대비해서 13살 이전의 기억을 맡아줄 친구들도 구해놨다. 해왔던 약속, 앞으로 이루고픈 목표까지 데이터베이스에 적어놨고. 나머진 네가 알아서 해라. 트라우마가 없는 새로운 길을 가기 위해서 이 고생을 하는거니까.

 

하리올 키피아니, 너는 이 이후 스스로를 믿지 못하게 될거다. 거의 12년간의 기억을 날리는건 과부하가 클테니... 어떤 부작용이 올지 상상하기도 싫군. 평생 너와 권능만 믿고 마음대로 살았던 시절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해라. 어찌 보면 실제로도 그게 맞긴 하니까.

 

대신, 앞으론 친구들을 믿을수 있을거다. 더 이상 괴로워하지 말고, 그들과 미래를 도모해. 그게 내가 나에게 주는 내일이라는 이름의 선물이다. 평생...예언이니 운명이니 지껄이는 미래에 반항하면서 살아라.

 

나다운건 그걸로 충분해. 

[녹음은 거기서 뚝 끊긴다. 정적.]